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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시 명 : 서독으로 간 에트랑제, 이응노 / 1959년 독일 순회전 
>> 전시기간 : 2014.06.14(토) - 2014.09.21(일)
>> 전시장소 : 이응노미술관 1~4 전시실
>> 주    제 
    - 1959년 독일의 세 도시(프랑크푸르트, 쾰른, 본)에서 열린 네 번의 
      고암 순회전 당시 작품과 자료, 현지에서의 평가 등을 집중 조명하는 
      자료전으로, 1950, 60년대 서구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고암의 예술세계를
      조명하고자 함
    -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 독일 중부 도시 카셀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 행사)’로 대표되는 서구 현대미술과의 첫 만남이
      고암의 작품세계에 미친 영향과 그 변화 과정을 모색
>> 작    품 : 독일 순회전 출품작 및 자료, 카셀 도큐멘타 관련 기사, 영상, 도록 등 이응노 대표작 10여점 
>> 부대행사 : 학술세미나 2014. 9. 3(수) 14:00 / 대전시립미술관 세미나실



[기획의도]

1959년은 고암이 1960년 초 프랑스 파리에 완전히 정착하기 이전 독일에 머물며 세 도시(프랑크푸르트, 쾰른, 본)에서 네 번의 순회전시를 가졌던 해이다. 그는 한국에서 발표했던 <도불전> 작품들을 유럽에 처음으로 선보였고, 그 시대 서독의 주요 예술 경향이었던 현대추상미술을 직접 대면하게 된다. 당시 고암의 작품은 현지에서 많은 호평을 받았지만 독일 체류 이후의 그의 작품들이 급격하게 변화했던 것은 이곳에서의 새로운 경험의 영향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전시에는 당시 고암이 경험했던 유럽 현대 예술의 흐름 속에서 1959년도 전후의 고암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그 영향 관계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또한 당시 서구 예술의 주요 흐름과 시대적 문맥 속에서 고암의 작품이 차지하는 위치와 그에 대한 평가를 이해함과 동시에, 50년대 후반의 정체된 한국미술계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떠났던 고암이 그의 항로를 새롭게 개척해 가는 모습을 엿보고자 한다. 

*  주한서독 대사 헤르츠(Ricahrd Hertz) 박사의 추천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전시(1959/2/21~3/28)를 하게 된 고암은 동아시아 예술에 대한 그들의 막연한 선입견을 깨어버리며 한국화의 근대성을 선보인다. 그곳에서 받은 좋은 평과 쾰른 시립미술관장과의 만남으로 쾰른 현대미술관 부속 브와세레 갤러리에서도 전시(1959/06/08~07/05)를 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동양화의 전통과 서양화의 영향이 비상하게 합치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한국화가의 선전에 고무된 손원일(孫元一) 독일대사의 권유로 당시 서독의 수도인 본 시립 전시공간에서도 전시(07/15~08/09)를 하였으며, 한국대사관에서 동양화 수업도 할 수 있었다. 독일 대통령 부인(빌헬미네 뤼브케 여사)이 후원하는 ‘쾰른 여성클럽-독일 리케움 클럽’ 이 주관한 행사에서도 전시(1959/9)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소개되었다.




프랑크푸르트 메인강가 2월 15일 아들 이융세와 함께




본Bonn 전시 사진

당시 서독의 기사 Neue Presse, 1959.2.19


[전시장 구성]

제 1 전시실 : 독일로 간 고암 

독일 순회전 당시 고암은 2번의 개인전과 2번의 부부전(이응노?박인경)을 갖는다. 1 전시장의 도입부는 ‘본(Bonn)’의 ‘부부전’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도불전’에 출품했던 고암의 작품과 박인경 여사의 작품이 현지 기사와, 사진, 홍보 포스터 등의 자료들과 함께 전시된다. 전시 방식에 있어서는 관람객들의 감상을 돕기 위한 ‘인터랙션’ 기술과 ‘사운드 스폿라잇(Sound Spotlight)’이 도입되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전시 자료들을 좀 더 쉽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고암이 독일을 방문했을 당시의 현지 분위기와 국제 예술계의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영상, 사진 자료들도 함께 전시된다. 

제 2 전시실 : 고암과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

독일에서 ‘카셀 도큐멘타’를 관람한 고암은 당시의 충격과 그 느낌을 한국일보 기사를 통해 생생히 전달한다. ‘카셀 도큐멘타’는 독일의 중부 도시 카셀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행사로 회화, 사진, 조각은 물론 퍼포먼스, 설치, 아카이브, 필름 등 장르의 경계를 넘어 미래의 현대미술을 제시하는 실험적 예술행사로 평가 받는다. 1955년을 시작으로 초창기에는 4년, 현재는 5년을 주기로 열리고 있으며, 고암이 방문했던 1959년에는 ‘제2회 카셀 도큐멘타’가 개최되고 있었다. 제2회 카셀 도큐멘타의 주제는 ‘세계 언어로서의 추상(Abstrakte Kunst als Weltsprache)’으로 본 전시실에서는 당시의 카셀 도큐멘타 관련사진, 영상, 도록 등을 전시하여 카셀 도큐멘타를 통해 고암이 받았을 영향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제 3 전시실 : 고암의 콜라주(Collage) 

독일을 떠나 1960년 초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고암이 1960년도에 제작한 콜라주 작품들과 이를 처음 선보였던 파케티 화랑에서의 전시 도록, 당시 신문평들이 함께 전시된다. 앞의 1전시실에서 소개되는 <도불전> 작품들과의 비교를 통해 1959년도 독일에서의 경험이,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직접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또한 작품 스타일의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내재된 ‘한국의 전통성’에 대하여 주요 평론들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제 4 전시실 : 고암의 대표작품

앞의 전시관들이 1959년과 그 전후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면, 마지막으로 4 전시실은 상설전 형식으로, 문자추상과 군상 등 고암의 대표 작품들을 전시한다. 그러므로, 고암의 작품들을 접하지 못하였던 관람객들도 4 전시실을 통해 고암의 예술세계를 포괄적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응노 [콜라주] / 캔버스 위에 종이 콜라주 / 77x64cm / 1962



이응노 [풍경] / 한지에 수묵담채 / 133x68cm /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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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램프코어에 설치된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작품 ‘다다익선’이 보수에 들어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6일 “‘다다익선’ 모니터의 노후화와 제품 단종 등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1003대의 모니터 중 300여 대가 작동되지 않고 있다”며 “8월15일까지 보존 수복 작업을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다익선’은 백남준과 건축가 김원의 설계로 ‘88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램프코어에 설치됐다. 현재까지 28년간 전시되며 미술관을 방문하는 국내외 관람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비디오 타워인 ‘다다익선’은 퐁피두 미술관의 ‘삼색기’(1982)와 함께 1980년대 백남준의 멀티미디어 설치작업 완결판으로 평가받고 있다.

1003대는 1월3일 개천절을 상징한다. TV 수상기가 지름 7.5m의 원형에 높이 18.5m의 6층 탑 형태로 설치됐다.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작품 중 세계 최대 규모로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오르내리면서 어느 각도에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다다익선’ 보수 작업에는 1억~2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직무대행인 윤남순 단장은 “모니터가 단종된 탓에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큰 모니터는 어느 정도 확보했으나 작은 모니터가 문제”라며 “부족한 모니터는 베트남 등 동남아로 수출된 것들을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7월까지 보수를 완료하고 8월15일 정식으로 일반에 공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동안 ‘다다익선’ 보존을 위해 미술관 내부적으로 활발한 논의를 진행해온 것은 물론, 미술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지속적인 보존수복 작업을 해왔다.

swryu@newsis.com



생전의 반 고흐는 밀레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씨 뿌리는 사람’을 10여 차례나 반복적으로 모사할 정도로 좋아했다.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고흐의 작품 ‘씨 뿌리는 사람’은 그렇게 해서 탄생됐다.

왜 고흐는 밀레의 작품에 매료 됐을까. 당시 미술계에는 인간을 중심으로 화폭을 구성하는 작가는 없었다. 역사와 성서, 신화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밀레는 오랜 전통을 깨고 인간의 일상을 중심으로 한 현실에 주목한 것이다. 이러한 대범한 시도가 고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밀레를 비롯한 바르비종파가 이를 주도했다. 바르비종은 파리 남쪽에 위치한 퐁텐블로 숲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19세기 중반 콜레라를 피해 파리를 떠난 작가들이 모여 주변 숲과 사람들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유파라 할 수 있다. 산업혁명으로 탄생된 기차의 등장은 작가들로 하여금 먼거리의 여행을 가능케 해주었다, 자연의 직접 체험이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아틀리에에서 상상으로 버무린 이상화된 풍경작업을 하던 전통 기법은 점차 사실주의적 풍경화로 변화됐다. 작가들이 야외로 나가 현장에서 스케치하고 채색작업까지 했다. 곧 다가올 인상주의 미술을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작업방식이다. 전통적으로 화가들의 작업은 대부분 작업실에서 이뤄졌다. 루브르미술관처럼 옛 대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미술관을 직접 방문하여 필요한 주제나 기법을 익혔다. 도판을 통해 대가들의 작품과 기법을 모사하고 모방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산업혁명으로 휴대가 용이한 양질의 물감 생산과 캔버스의 등장은 변화에 가속이 붙게 했다. 한층 작업을 용이하게 만든 미술도구들의 등장이 작업에 신선한 바람이 된 것이다. 문명의 이기들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미술을 꿈꾸는 화가들에게 전통을 탈피하고 새로운 형태의 작업을 시도케 하는 촉매제가 된 셈이다. 이는 작가의 감성이 가미된 보다 주관적인 표현기법들이 등장하게 해주는 배경이 됐다. 전통의 틀에서 해방된 작가주의 미술의 시초인 인상주의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서양미술사에서 밀레 이전과 이후로 양분될 만큼 소재에서의 해방은 밀레가 남긴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종교와 신화에서 벗어나 인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모더니즘을 선도했다는 얘기다. 밀레의 대표작이자 미국 보스턴미술관 4대 걸작인 ‘씨 뿌리는 사람’(사진), ‘감자 심는 사람들’, ‘추수 중에 휴식’, ‘양치기 소녀’가 25일부터 5월10일까지 소마미술관에서 열리는 ‘밀레’전에 출품된다. 간판작이라 할 수 있는 ‘만종’은 아쉽게도 아번 전시에서는 볼 수 없다.

‘씨 뿌리는 사람’은 당시 신분이 낮았던 농부를 큰 캔버스에 어두운 색채와 거친 붓놀림으로 영웅적으로 표현했다. 노르망디를 배경으로 검게 그을린 농부가 진흙밭에서 싸를 뿌리며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대지를 무대로 살아가는 농부의 존엄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19세기 프랑스 민주화 혁명의 시대상이 읽혀지기도 한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세계일보]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로437 용문중학교 미술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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